함께 가는 길





오전에는 책으로 읽고 오후에는 영화로 봤다.
영화를 먼저 볼까 했는데 이미지로 접하는게 앞서면 이미지에 압도당할까봐
활자를 우선 택했다.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간단한 내용을 보자면.
초로의 예술가(소설/작가,영화/작곡가)가 베니스에서 여행하던 중에 마주친
소년에 대한 사랑으로 전 생애를 지배하고 있던 예술과 도덕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며
혼란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원작인 소설을 충실히 따라가는데 몇 가지 설정이 바뀌었다.
소설에서는 작가였던 주인공을 영화에선 작곡가로 바꾼 것이다.
소설에서 그는 아내와 사별한 걸로 그려지는데
영화에선 딸만 잃은 걸로 나오고 아내에 대한 묘사는 그렇게
중요하게 나오지 않고 있다.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예술에 대한 주인공의 관점(윤리적인 면을 중요시 하는)
에 대한 묘사를 영화에서는 친구와의 대화(회상)으로 풀어낸 게 다르다.
나머지 전반적인 분위기와 대사 등은 원전을 충실히 따랐다.
소설이나 영화나 탐미적인 분위기가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으나
영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마지막을 보면 소설의 마지막은 예술가로서 전복당해 실패한 예술의
말로를 보여주는 종교적인 결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다르다.
마지막에 아센바흐는 체념과 환희의 표정으로 운명을 받아들인다.
낙원에서 예술가로서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는 주인공이 마치 투사(!)처럼 느껴졌는데
-생각해 보라. 생 전반을 지배하던 도덕과 예술에 대한 관념을 송두리째
뒤바꿔놓는데-
영화에선 애처로운 연인의 모습이었다.
영화 초반에 그가 경멸하던 배에서 만난 화장한 중년 남자와 같이
그도 염색을 하고 화장을 한다. 그 이율배반적인 모습하며.
영화 말미, 소년을 따라가다 지저분한 거리에 지쳐서 주저앉아 버리고
마는 그는 노쇠한 육체와 분열된 정신의 혼란 속에 절망에 빠져든다.
이 장면에선 정말 눈물이 날 뻔 했다.

영화 전반을 휘감는 말러 교향곡 5번(4악장)의 선율도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말러가 1911년에 세상을 떠났고 토마스 만이 소설을 발표한 건 1912년,
토마스 만은 주인공을 작가로 설정했지만 말러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비스콘티가 작곡가로 주인공 직업을 바꾼 게 비스콘티만의 의도는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구스타프 아센바흐, 구스타프 말러.
이름에서부터 뭔가 감이 오지 않은가.
그리고 외모, 정말 말러의 재현이다 싶게 생전의 말러와 비슷한 외모로 그렸다.
말러의 섬세하고 신경질적인 성격 묘사까지 차용한 걸 보면
이 영환 말러가 아니면 나올 수 없었던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은 착각도 들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는 시대가 바뀌어도 사그러들지 않음은 분명하다.
늙고 추해지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 아름다움에 대해 가지는 욕망은 꺼지지 않는
불꽃임에 틀림 없다.



p.s
이 소설을, 영화를 본 건 비스콘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영화감독, 다양한 예술에 대한 폭넓은 안목(오페라감독도
했다.),

드라마같은 생애를 가진 현대 과거의 사람.
마리아 칼라스가 사랑했던 남자였기도 했다.
사실 그래서 더 궁금했었다.
예술과 미에 대한 찬양과 고무, 이 한 작품으로 그의 전체 예술을 조망하는 건
웃긴 일이지만 그는 분명 대단한 탐미주의자였을 것이다.

p.s 2
찾아보니 토마스 만이 말러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았다는군. ;;
나만 몰랐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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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키터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