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정말 좋아했던 1人으로서 이 소설은 실망을 넘어 허탈하다.
소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20년 전 사랑했던(하는) 남자는 화자를 사랑했지만 언니와 결혼을 했고
집 하나 빼고 전 재산을 홀라당 까먹고 오랫 동안 소식이 없었다.
20년 만에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화자만을 사랑했으며 고작 20년 전에
쓴 화자는 보지도 못한 편지 세 통 드립을 하며 달랑 하나 남은 집 한 채 마저
앗아가려고 왔는데 화자는 다 알면서도 내어준다는 무슨 쌍팔년도스런 줄거리.
입만 열면 거짓말에 진실은 약에 쓸래야 쓸 수 없고 아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금전적 정신적인 빚을 지고 있음에도
모든 행동을 의도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때문에
죄가 없고 순수하다?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람.
이런 남자를 20년 간이나 못 잊고 하나 남은 집 한 채 탈탈 털어주는 여자 역시
호구 인증인 셈이지.
물론 이런 식의 이야기가 이거 하나만은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라도 매력이 있던가.
악의는 없지만 주변인을 착취하는 캐릭터라면 적어도
강력한 매력 하난 있어야지.
악의가 없고 의도가 없다는 게 면죄부는 아니란 말이지.
화자 역시 딱하긴 마찬가지다.
벗어나려면 확실히 벗어나든가.
20년 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막판까지 이용당해주는 센스라니.
남자가 화자에게 성품 어쩌고 저쩌고 하며 당신만을 사랑했소 하면서
화자가 못 받은 편지 세통을 새삼 들이밀며(남자와 화자가 묶여 있고
이것은 화자가 책임이 있으니) 책임을 지라는 자가당착과 자기모순의
말들을 늘어놓는데 머리에 뚜껑이 있었다면 진즉 폭발했겠다 싶다.
우리는 용감하게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랑은 여자의 작품이다?
남자들의 용기는 하잘 것 없기 때문에?
관계의 책임은 양쪽이 동등하게 지는 것이다.
하긴 이런 어린애같은 남자를 잊지 못한 화자가 종국에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내어줄 수 밖에 없는 귀결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지 팔자 지가 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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