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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8 트루먼쇼로 본 서른의 의미






<트루먼쇼> 하면 big brother에 의한 인간 조종, 미디어의 인간 지배 등을
떠올리게 된다.

최근에 이 영활 다시 봤는데 나에겐 좀 다르게 다가온다.
영화 속 트루먼의 나이는 30세.
만으로 치면 뭐 29세라 하는데 방송 30주년이라 하니 서른으로 봐야겠지.
트루먼은 왜 스물에는 스물 다섯에는 알지 못한 걸 서른에 알게 되었을까.
 
내 경험에 비춰보자면 말이다.
20대는 정말 암흑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30이 되고 보니 별 거 아닌 거였다.
(하지만 그 암흑의 핵심이 그리워지는 걸 보니 슬프다. ㅠㅠ)
20대에는 아무리 어른인 척 해도 스스로가 볼 수 있는 세계는
자기 주변 뿐이다.
뭐 옛어른들은 나이 스물에 이미 구국운동을 하고 블라블라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자기가 온전히 판단했다기 보단
휩쓸린(?) 마음이 크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 휩쓸린 마음을 폄하하거나 훼손하려는 의도 절대 아니다.
그 분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찌 지금 여기서 이러게 키보드질을
할 수 있겠는가...
공선생 왈, 나이 삼십을 이립(而立)이라 했다.
뜻을 세우는 나이, 다시 말하면 자기 생각이 박혀 독립하는 시기란 뜻이다.
이미 2000년도 훨씬 이전에 공선생도 자기가 자립한 때는 서른이라고
말씀하신 거였다.
벼나 다른 식물이 열매를 맺을 물리적 시간이 있어야 하고 동물들이 새끼들을
건사할
시간이 있어야 하듯 인간도 자립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케바케이긴 하
지만 환경의 변수
를 모두 제거한다고 할 때)이었다.
그 시점을 서른으로 보는 것이었다.
물론 2000년 전의 서른과 지금의 서른은 확연한 차가 있다.
그 시절엔 기실 서른 전에 벌써 독립한 이들이 여럿 되었다.
혼인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가장으로서 밥벌이를 하는 게 서른 훨씬 이전에
이루어진다.

현대는 서른이라 하면 아직은 패기충만한 나이로 봐주고 혼인도 개인차에 따라
시기적인
차가 크고 점점 서른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서른이 갖는 의미는 설익은 젊음이 아니다.
젊음은 젊음이되 좀 더 성숙한 젊음의 의미랄까.
젊음을 인정해주지만 방만한 젊음을 용인해 주는 시기는 아닌 게 서른이다.
그러니 청춘이 끝나기 전에 표류하지 않을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게 서른의 임무다.

트루먼은 공허한 자신의 청춘을 시험대에 위에 올려 놓는 모험을 감행했다.
세트 밖으로 걸어나간 트루먼의 삶이 불행할 지 행복할 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뒤돌아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만은 가벼워 보였다.


2009. 11. 22

작년 이 맘 때쯤 쓴 건데 표류하는 청춘을 잡기 위해선 아직 유효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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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키터리지